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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타마르에게서 드러난 정의와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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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리빛 작성일16-02-03 09:01 조회3,0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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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 유다와 타마르, 1840, 캔버스에 유채, 130 x 98 cm, 윌리스 소장, 런던
 
베르네 오라스 (Vernet Horace 1789~1863)는 프랑스 낭만주의 한 경향인 오리엔탈리즘 화가이다. 동방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상의 동기나 제재題材로 삼았는데, 성경을 소재로 한 이 그림에서 이스라엘 전통적인 의상과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색채와 선의 조화 속에서 여성의 육체를 부각시키는 관능미와 심미주의 경향이 짙으나, 직물과 장신구의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하여 이야기 속의 세밀한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타마르에게서 드러난 정의와 축복
예수수도회 김연희 클라라 수녀(예수수도회 교육센터)

가끔씩 무심히 지나쳐 왔던 주변의 것들이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발견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으로 여기지 않았던 인물의 역할을 섬세한 눈길로 바라보았을 때에, 그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지닌 삶의 주인공이듯이! 지난 몇 년 동안 성조사를 강의할 때에 그냥 지나쳐 버렸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살짝 건너뛰어도 별 상관이 없는, 역사에서 별것 아닌 주변 이야기, 앞뒤의 장과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창세 38장의 유다와 타마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타마르에게 이제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니, 하느님의 약속과 신탁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했던 그의 도전과 한 여성의 운명에 담긴 그 숱한 비애를 통해 드러난 정의의 빛과 하느님의 강복의 손길을 느낍니다.
 
그 애가 나보다 더 옳다!
 
유다(‘찬양하라의 뜻)는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네 번째 아들입니다(창세 29,35참조). 임종 때에 열두 아들들에게 내리는 야곱의 축복은 이스라엘 지파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에게 내린 하느님의 복은 농업과 관련된 풍요로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유다에게 유독 그의 우월성을 언급하고 다윗을 배출할 유다 지파에 왕권을 예언하였습니다(창세 49,8-12 참조). 즉 유다 지파에서 다른 모든 지파를 다스릴 임금이 탄생할 것이고, 다윗 후손 가운데 만백성에게 존경을 받을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시편 60,9; 78,68-69; 114,2 참조). 이러한 축복의 예언과 관련하여, 창세 37-50장에서 돋보이는 요셉의 이야기 사이에 유다와 타마르의 이야기는 엉뚱하게 삽입된 듯한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전개 될 이스라엘 역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이고 구원의 역사에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형제들과 떨어져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 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아들 셋을 얻었고 가나안 여자 타마르를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이렇듯이 장차 이스라엘에서 패권을 쥐게 될 유다 지파에 가나안 사람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야훼계 전승은 전하고 있습니다. 타마르는 대추 야자나무를 뜻하며 여인의 이름인 동시에 성읍의 이름으로도 쓰였습니다(1열왕 9,18; 에제 47,19). 타마르의 남편 에르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죽고 유다인의 율법에(신명 25,5 참조) 따라 시동생 오난을 맞아들이지만, 오난은 의도적으로 형의 대를 잇는 것을 거부하여 하느님의 벌을 받아 죽고 맙니다. 이렇게 이야기의 주제와 모든 관심은 아들을 낳는 데로 모아집니다. 성조 아브라함을 통해 주어진 후손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창세 12,3 참조). 타마르는 자녀 갖기를 몹시 원하였지만 시아버지 유다는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 셀라마저 죽을까 두려워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냅니다. 셀라가 아직 결혼하기에 어리다는 구실을 내세웠으나, 세월이 흐르고 아내가 죽고 셀라가 성장한 뒤에도 유다는 타마르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친정집에서 과부의 옷을 입고 처절한 고독 속에 막연하게 기다리며 살다가, 부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저주받은 사실에 슬퍼하고 있는 타마르에게 우연찮게 시아버지가 팀나로 양털을 깎으러 온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위험천만하고 비정상적인 계획을 세우고, 마지막 가능성을 위해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타마르의 불안함과 과감성을 우리는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청상과부 타마르는 이제 과부 옷을 벗고(유딧 10,3; 16,7 참조) 신전창녀처럼 변장해서 성문 어귀에 앉아 유다를 기다렸고, 계획대로 몸값 대신 인장과 줄, 지팡이를 담보물로 요구했고, 유다와 한자리에 들어 임신을 하였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친구를 시켜 그 창녀를 찾아내어 담보물을 되돌려 받으려 했지만, 여인의 행방이 묘연하여 포기해야 했습니다. 석 달 후에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는 법에 따라(레위 21, 9 참조) 간음한 타마르를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를 변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담보물은 태아의 아버지를 입증하였습니다.
 
유다는 그 애가 나보다 더 옳다!”(창세 38,26)라며 타마르의 무죄를 시인합니다. 타마르가 선조의 후손이 끊기지 않도록 유다보다 더 정성과 힘을 쏟았다는 의미에서 유다보다 더 의롭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마르는 시댁 가문의 혈통을 잇기 위하여 불가피한 수단을 쓴 것으로 판명되고 그의 행동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으로 타마르를 쫓아낸 유다보다 타마르는 처절한 버려짐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가나안의 신이 아닌 히브리 인들의 유일하신 하느님만을 부단히 찾으며 갈구했던 노력이 옮았음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마르의 지혜와 용기를 두고두고 찬양하고 기억합니다(4,2 참조). 인간의 죄스러움이 축복으로 바뀌는 구원 역사의 신비를 만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한(마태 1,3 참조) 타마르를 봅니다. 그리고 타마르에게서 죽음을 이겨낸 사랑의 승리, 어둠을 벗겨 낸 빛의 위력,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난 참된 관계가 밝고 찬란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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