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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삼손의 아내와 들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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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리빛 작성일16-02-17 09:59 조회3,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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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 삼손과 들릴라, 1615, 캔버스에 유채, 129 x 94 cm, 클리브랜드 미술관, 미국
 
혼토르스트 (Gerrit van Honthorst 1590~1656)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이다. 사실적이면서도 강한 명암의 대조, 압축된 화면을 구사하는데서 그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화풍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강한 명암대조로 어둡고 두려운 분위기를 내던 카라바조와는 달리, 하녀가 든 촛불로 빛의 근원을 밝혀 좀 더 합리적으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성경의 내용과 다르게 17세기의 그림에서는 들릴라가 직접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더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이 모습에서 여성의 힘으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유딧을 연상할 수 있다.
 

삼손의 아내와 들릴라
예수수도회 김연희 클라라 수녀(예수수도회 교육센터)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그림과 음악, 소설, 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재조명되어 왔습니다. 특히 생상의 오페라에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부르는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 담겨 그 가사와 선율이 감미롭고 매혹적입니다. 학창 시절에 단체 관람으로 보았던 세실 B. 드밀 감독의 영화 삼손과 데릴라도 추억의 고전 명화중의 하나로 줄거리가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출연 배우들의 열연에 감동했던 기억과 지금도 드물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을 당한 삼손을 동정하며 처절한 결말에 마음이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판관이며 영웅인 힘센 장사 삼손의 이야기를 판관기를 통해 만나 봅시다.
 
당신의 그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판관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왕정이 세워지기 전까지,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판관들의 행적을 길고 짧게 소개하는데, 마지막 판관으로 삼손(판관 13-16장 필독)을 언급합니다. 삼손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화와 일화로 독특하게 엮여 서술되어 있으며, 성경 전체에서 전설적인 요소가 가장 많은 긴 영웅담입니다.
 
삼손 이야기의 배경에 등장하는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과 숱한 전쟁과 갈등을 빚었던 민족입니다. (각주 1) 요르단 동쪽에서 서쪽 지역으로 세력을 넓며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던 이스라엘은 북동쪽으로 세력을 넓혀 가던 필리스티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측의 갈등이 점점 심해진 시기에 삼손(‘작은태양이라는 뜻)이 태어납니다. 단 씨족에 속한 마노아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삼손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으로서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에게서 구원할 인물이라고 주님의 천사가 알려줍니다(판관 13,3-5; 루카 1,12-17. 30-33 참조). 나지르인(민수 6,1-8 참조)은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셔도 안 되고,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먹어서도 안 되며, 또 머리털을 잘라서도 안 되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이에 대한 서약을 주의 깊게 지켰습니다.
 
하느님의 강복 속에서 자라난 삼손에게 주님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그는 초인적인 힘을 지니게 됩니다. 팀나에서 사자 한 마리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사건은 이를 잘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후에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발견하여 먹음으로써 삼손은 서약을 파기하기 시작합니다. 삼손은 한 필리스티아 여인이 마음에 들어(판관 14,3.7참조) 부모의 반대에도 결혼하였고, 잔치에 온 필리스티아인들과 내기하여 홧김에 아내를 버립니다. 삼손은 아내와 재결합하기를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더욱 화가 나서 필리스티아인들의 밭을 불태워버립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몰린 삼손의 아내는 결국 동족에 의해 불에 타 죽습니다. 그는 혼인잔치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감정싸움과 복수전의 소용돌이에서 이용당했습니다. 이야기는 이 여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하느님께서 삼손을 통해 필리스티아인들을 쳐 죽였다는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여인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손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들릴라와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속임수가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못 이겨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고, 머리털이 깎여 나지르인의 세 번째 서약을 파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삼손의 순수한 사랑과 신뢰를 저버린 들릴라를 비판하는 데에만 초점을 모읍니다(그래서 이점을 중심 주제로 삼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요부 들릴라는 유혹하고 배신하는 여성의 전형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필리스티아 남성들이 삼손의 약점을 이용하여 여성들을 그들의 책략으로 끌어들였고, 여성들은 동족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던 것입니다. 사실 삼손 이야기의 초점은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의 관계에 있습니다. 삼손은 다른 판관들처럼 군사를 동원하여 적과 전쟁을 벌인 것이 아니고 여인들과 있었던 사건을 통해 적을 무찔렀습니다. 또 그는 어떤 전쟁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주님의 영에서 나오는 비범한 힘으로 적을 쳐부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의 카리스마를 받은 자가 하느님의 영을 무시하고 개인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죄와 파멸을 낳는 육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삼손은 이기적이고 무절제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맺은 서약을 잊어 버렸고,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어 결국 비극적인 영웅이 된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구원 도구로 쓰이는 지도자라고 해도 품성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인간의 약하고 어리석게 잔꾀를 부려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은 살아 있습니다. 삼손은 마지막 순간에 회개와 믿음의 기도(판관 16,28-29참조)를 보여줌으로써 후대에 믿음의 선조들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됩니다(히브 11,32 참조). 우리도 들릴라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의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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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필리스티아의 이해’- 말씀을 알아듣기 위하여(16)>, 최승정 글, 성서와 함께, 통권 361, 20064월호, 90-9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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