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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현실에 민감한 욥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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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리빛 작성일17-03-09 16:53 조회27,476회 댓글0건

본문

현실에 민감한 욥의 아내

     (예수수도회 김연희 클라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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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욥과 욥의 아내, 1504, 패널에 유채, 94 x 51 cm, 시립 미술관협회, 프랑크푸르트, 독일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의 작품에서 욥의 아내가 욥에게 물을 붓고 있다. 곤경에 빠진 욥은 아내의 말과 행동이 성가시다는 듯이 눈을 감고 턱을 괴고 있으며 외면하는 듯한 표정이다. 두 사람이 서로 교감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두 폭의 제단화인 이 그림의 다른 측면에는 두 명의 연주가가 피리와 북으로 욥을 위해 치유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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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아내에게 조롱당하는 욥, 1630, 캔버스에 유채, 145 x 97 cm, 보주 박물관, 에피날, 프랑스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그림에 묘사된 아내는 욥 앞에서 마치 거대한 기둥같이 든든하게 서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수평과 수직의 구도로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있는 욥의 자세가 올바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이 절망의 순간에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듯 그들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고 욥은 아내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현실에 민감한 욥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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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강렬한 물음이 자신의 영혼을 온통 감싸 목마름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하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하나이다.”(시편 42,2-3)라고 애타는 마음을 털어 놓은 시편의 기도자처럼, 자신의 심정을 표현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이러한 갈증이 캄캄하고 어두운 밤처럼 느껴져, 십자가의 성 요한은 내 사랑이시여, 어디에 숨으시어 저를 고통 중에 버려두셨나이까?”(영혼의 노래 1)라고 애절하게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어 신의 부재不在(23,8-9 참조)라고까지 표현했던 욥의 고통을 바라봅니다. 먼저 그가 머물고 있는 잿더미 위, 그 고통의 자리에 다가가 봅니다. 욥의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소리를 조용히 듣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2,9에서 욥의 아내는 욥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성경에서 하나밖에 없는 문학 형식으로 구성된 <욥기> 전체에서 욥의 아내를 언급한 것은 이 구절뿐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던진 아내의 이 한마디 말에 대한 성서신학적 해석은(각주1) 여러 가지입니다. 이 발언에 대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해석을 통해 욥의 아내에 대한 역할과 평가를 재인식합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욥의 아내의 말을 냉소적으로 묻는 질문처럼 번역합니다. 그 까닭은 하느님을 저주하라.’는 표현이 묘하게도 욥이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1,11; 2,5)라는 사탄의 예고를 반향하기 때문입니다. ‘저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말( bārāk (ברך)은 본래 찬미하다를 뜻하지만, 반어법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성서(마소라본)와 달리 칠십인역은 두 줄에 불과한 그의 말을 무려 다섯줄까지 확장하였습니다.(각주2) 이것은 성경에 잠깐씩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부연하려는 미드라쉬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 문헌들 가운데 <욥의 유언>에 나오는 욥의 아내는 시티도스(Sitidos)'라 불리는데, 헌신적이며 동정심이 깊은 아내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여인이 한 발언으로 사탄의 도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욥의 아내를 하와의 닮은꼴로 묘사합니다. 곧 여자란 남자를 돕도록 창조되었으나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욥의 아내를 사탄의 조력자라 칭하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욥의 가족 가운데 아내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까닭은 그가 사탄의 계획의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학자들은, 주님께서 그는 아직도 자기의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2,3)라고 욥을 인정하셨던 말씀을 욥의 아내가 그대로 반복하였다는 데 초점을 둡니다. 욥의 아내가 한 말이 욥기에서 제기할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보며, 조롱과 멸시가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연민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욥이 하느님과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좀 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도록 도전하였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인정하는 가운데 무죄한 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그분의 부조리함을 실토하는 아내의 감정은, 그런 감정을 부정하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훨씬 더 진실하다고 봅니다. 이처럼 욥의 아내가 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든 부정적으로 해석하든 상관없이, 아내의 말에 즉시 대응하는 욥의 답변(2,10 참조)에서 아내의 역할을 좀 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의 말에 대한 욥은 자신에게 최고의 가치인 하느님과의 관계를 고수하고 있다고 확고한 입장을 밝힙니다. 욥이 굳게 지키는 흠 없음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실이 아니라, 불리한 처지에서도 변함없이 하느님을 추구하는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욥의 아내는 끝내 욥이 하느님을 저주하도록 주창한 인물로 머물지 않습니다.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2,10)는 진술로 욥과 아내의 대화를 매듭짓습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과의 침묵 가운데서 스스로 입을 열며 자신을 부당하게 취급하시는 하느님께 처음으로 부정적 반응(3)을 하게 되고, 전통적인 인간의 지혜를 따르는 동료들과 긴 대화(4-31)에서 수많은 인간적인 이야기를 쏟아 냅니다. 욥보다도 현실에 민감한 아내의 발언이 이런 일들을 미리 맛보게 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욥을 향한 아내의 도전은 둘 사이의 깊은 친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욥의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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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과 함께 한 고통에 대한 묵상하다보면, 악과 고통의 신비 앞에서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이가 자신의 흠 없음(하느님과의 관계)을 굳게 붙듦으로써 결국 하느님을 직접 뵈옵는 체험(42,5 참조)도 목격하게 됩니다. 아울러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의 길, 파스카 신비로 나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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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욥기의 תמם 연구>, 이명기, 가톨릭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62)66-80쪽 참조.

각주2)

한참 뒤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말씀을 참으시렵니까? 보십시오. 나는 아직 좀 더 기다립니다. 내가 내 구원의 희망을 고대하며. 보십시오. 당신에 대한 기억은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 내 배의 수고와 진통, 나는 헛되게도 그들을 애써 길렀습니다. 당신은 구더기들이 우글대는 바깥에 앉아 밤을 지새우고 계십니다. 나는 방랑자, 종의 신세, 이곳저곳 이 집 저 집 떠돌며 땅거미 지기만을 기다립니다. 이 고생과 저를 엄습한 비통함에서 좀 쉴까 하여. 그러니 주님께 무엇이든 말씀드리고 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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